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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라면 평택 묵집 685회 묵집 엄마 복순 씨의 내가 사는 이유 주문 택배

by 오로라를찾아 2025. 4. 20.
사노라면 평택 묵집 685회 묵집 엄마 복순 씨의 내가 사는 이유 주문 택배

 

 

 

평택시의 한 오래된 골목, 낡은 간판조차 없는 식당 앞에는 오늘도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곳. 그러나 그곳을 알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이곳은 단순한 식당이 아닌, 오랜 시간과 사연이 고스란히 담긴 ‘기억의 식당’이다. 바로 55년째 같은 자리에서 묵을 쑤고, 사람들의 마음까지 데워주는 김복순(78) 씨의 묵집이다.

묵집을 운영하는 내내 그녀 곁을 지켜준 사람은 남편 박재헌(86) 씨다. 하지만 젊은 날의 그는 그렇게 믿음직한 존재는 아니었다. 술과 노름, 그리고 잦은 빚. 아내가 일한 돈마저 손에 쥐기 무섭게 잃어버리던 시절. 김복순 씨는 그런 남편을 원망하기보다 가족을 위해 더 열심히 살았다. 아이들이 커가고, 집안이 조금씩 안정을 찾자 박재헌 씨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제야 그는 깨달았다. 평생 고생만 했던 아내가 얼마나 위대한 존재였는지를. 그때부터 그는 아내의 식당에 재료를 대는 농사를 짓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그 일은 계속되고 있다.

이제 묵집은 한 세대를 넘어선 가족의 생업이 되었다. 복순 씨의 장남 박진석(54) 씨가 10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일을 도우며 가게를 함께 꾸려나가고 있다. 어머니의 손맛을 익히고, 손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가게 구석구석을 챙기는 그의 모습은 가게의 또 다른 미래다. 하지만 그들이 묵을 쑤며 버텨야 했던 시간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다섯 자녀를 훌륭하게 키워냈지만, 부모 노릇을 다 했다고 생각한 찰나 찾아온 비극. 큰딸과 막내아들을 사고로 먼저 떠나보내야 했다. 자식 잃은 부모의 슬픔은 말로 형용할 수 없다. 하지만 그 고통조차 충분히 느낄 새도 없었다. 남겨진 손자들을 책임져야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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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로 복순 씨와 남편은 더욱 일에 매달렸다. 힘든 일을 하면서라도 슬픔을 견디기 위해서였다. "지금도 가끔은 가게 문을 열다 말고 주저앉아 울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래도 울 수 없어요. 먹고 살아야 하니까요." 그녀의 말엔 지친 기색도 있었지만 여전히 단단한 의지도 느껴졌다.

큰아들의 생일, 복순 씨는 고기를 듬뿍 넣은 미역국을 끓여놓고 아들과 식사를 했다. 아들의 생일을 챙기며 웃었지만, 다음 날이 막내아들의 생일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어느덧 그녀의 꿈에 떠난 자식들이 하나둘씩 찾아왔다. 그렇게 그녀는 처음으로 자식들에게 술 한 잔을 따라주기로 마음먹었다. 예전처럼 순대를 삶고, 자식들이 좋아하던 술을 준비해 조용히 술잔을 채운 복순 씨는 가만히 중얼거린다. “보고 싶다. 너희가 너무 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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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평택의 무명 묵집에는 음식 이상의 이야기가 흐른다. 그저 묵 한 사발에 담긴 것은 콩물과 전분이 아니라, 인생의 쓴맛과 단맛, 그리고 그 안에서 피어난 모정과 부성이다.

오늘도 복순 씨는 가게 문을 연다. 간판은 없지만 그녀의 정성과 삶의 향기는 거리를 채우고, 손님들은 그 향을 따라 다시 이곳으로 찾아온다. 그녀의 묵이, 그녀의 인생이, 이 세상의 수많은 어머니들의 삶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묵이 쫄깃하게 익어갈 때쯤이면, 그 안에 스며든 세월도 함께 익어간다. 그리고 우리는 그 따뜻한 한입에, 누군가의 삶을 고스란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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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내리묵집

 

경기 평택시 오성면 창내리 19-31